전력기기 업체 9곳 ‘동시 제재’
에너지고속도로 사업 전면 차질 우려
정부 핵심 공약이 송전망 딜레마에 갇혔다
전력기기를 공급하던 주요 업체 9곳이 동시에 공공입찰에서 제외됐다. 한전이 담합 의혹에 대한 제재를 단행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이로 인해 정부가 추진 중인 ‘에너지고속도로’ 정책을 비롯해 국가 전력 인프라 사업에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이들 기업이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전력기기 공급망 전체가 일시적으로 마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력기기 9개사 입찰 제한… 전력 공급망 위기
한전은 최근 효성중공업, HD현대일렉트릭, LS일렉트릭, 일진전기를 포함한 9개 전력기기 업체에 대해 입찰 참가 자격 제한 조치를 통보했다.
이번 제재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12월, 가스절연개폐장치(GIS) 입찰 담합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한 뒤 후속 조치로 이뤄졌다.
공정위는 이들 업체가 2015년부터 2022년까지 8년간 입찰 담합을 벌였다고 보고 과징금을 부과하고 일부 업체는 검찰에 고발했다.
한전이 부정당업자 지정을 근거로 공공입찰 참가를 제한한 결과, 국내 전력기기 공급망은 사실상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
해당 기업들은 변압기, 차단기, 배전반 등 주요 기자재를 과점하고 있어 공공 프로젝트 전반에 영향이 불가피하다.
업계는 공정위 이의신청 절차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한전이 입찰 제한 조치를 서둘렀다고 주장하고 있다. 효성중공업 등 4개사는 행정법원에 가처분 신청과 함께 본안 소송도 제기한 상태다.
정부 핵심 정책부터 민간 프로젝트까지 영향 확대
이번 제재는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에너지고속도로’ 사업은 전국 전력망을 단계적으로 확장하는 계획이다.
입찰 제한 기간은 최장 6개월이지만, 소송이 장기화되면 사업 일정이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송전망, 발전소, 데이터센터 등 주요 인프라에 필요한 기자재 납품이 늦어질 수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변압기나 배전반도 동일한 제재를 받기 때문에, 단순히 GIS 부문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SK AI 데이터센터처럼 자체 발주가 가능한 사업은 영향이 적지만, 공공 조달에 의존하는 경우 일정 지연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급망 안정 위한 제도 보완 시급
담합 제재는 불가피한 조치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 역시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공급망 전체가 위축될 경우, 결과적으로 공공 서비스의 품질과 일정이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한전이 업체별 사안에 따라 차등 적용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입찰 제한을 동시에 일괄 적용한 점이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정부와 업계는 공급망 붕괴를 막기 위해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중소기업 진입 장벽 완화, 부품 국산화, 공급망 조기경보 시스템 구축 등의 정책이 추진 중이다.
또한,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과 함께 담합 재발 방지 제도 역시 보완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이번 사태는 전력기기 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 사례다. 동일한 문제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공급망 안정화와 공정 경쟁 환경 조성이 병행되어야 한다. 정책 당국의 신속한 대응과 제도적 개선이 요구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