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4일(현지시간) 중국 전기차 견제를 위한 강력한 보호무역 카드를 공식화하면서 현대차그룹이 비상에 걸렸다.
EU집행위원회가 이날 발표하는 산업가속화법(IAA) 제정안에 따르면, 전기차 보조금을 받으려면 배터리를 제외한 부품의 70% 이상을 유럽산으로 사용해야 한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벤치마킹한 이 규제는 유럽 시장 점유율 12.8%까지 급성장한 BYD와 상하이자동차(SAIC) 등 중국 업체를 정조준했지만, 불똥이 한국 업체에도 튄 것이다.
중국 겨냥했지만 한국도 ‘오발탄’ 맞아
문제는 현대차그룹이 유럽에서 판매하는 전기차의 압도적 다수가 한국에서 생산된다는 점이다. 현대차에 따르면 2025년 유럽에 수출한 전기차 18만3,912대 중 무려 82.8%에 달하는 15만2,190대가 국내 생산 제품이다.
체코와 슬로바키아 현지 공장에서 일부 전기차를 생산하지만 대부분은 울산·아산 공장에서 생산된다. 따라서 연간 100만 대 이상을 판매하는 세계 3대 수출 시장에서 보조금 혜택이 사라질 경우, 가격 경쟁력에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
EU가 이번 규제를 서두른 배경에는 유럽 자동차 산업의 생존 위기가 있다. 2030년까지 총 35만 명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ZF는 7,000개, 보쉬는 1만3,000개, 콘티넨탈은 1만 개 이상의 일자리 감축을 예고했다.
더불어 2024년 10월부터 중국산 전기차에 최대 45%의 추가 관세를 부과했지만, 저가 공세는 여전히 위협적이다. 70% 부품 국산화 기준은 중국 업체의 유럽 내 생산 거점 확대를 막고, 역내 공급망을 강화하려는 복안이다.
하지만 한국 업체에게는 예상치 못한 변수다. 현대차그룹은 미국에서 IRA로 보조금을 못 받게 되자 유럽 시장 공략을 강화해왔다.
2025년 유럽 전기차 판매량이 전년 대비 50% 이상 급증한 것도 이런 전략의 결과다. 그런데 유럽마저 ‘메이드 인 유럽’ 프레임을 강화하면서 주력 수출 시장 두 곳에서 동시에 압박을 받는 형국이 됐다.
단기 공급망 전환은 ‘시간과의 싸움’
한편 법안이 원안대로 통과될 경우, 현대차그룹은 단기간 내에 부품 공급망을 유럽으로 대거 이전하거나 현지 생산 비중을 대폭 늘려야 한다. 하지만 이는 수천억 원대 투자와 최소 2~3년의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배터리팩, 모터, 인버터 등 핵심 부품을 생산하는 협력사들까지 함께 유럽으로 이동해야 하는 복잡한 공급망 재편이 불가피하다.
이에 현대차유럽(HME)은 “한국과 EU의 자유무역협정(FTA) 등 긴밀한 무역 관계를 고려해 동등한 대우를 보장해야 한다”며 제3국 예외 적용을 우회적으로 요구했다.
업계와 정부도 총력 대응에 나섰다. 한국무역협회는 국내 업계 의견을 수렴해 EU에 공식 서한을 전달했으며, 일부 EU 회원국 내에서도 중국의 보복 조치나 전기차 단가 급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면서 70% 기준 관철 여부는 아직 불확실한 상태다.
구체적 원산지 요건이 최종 확정되지 않았고, 일부 제3국에 대한 예외 적용 가능성도 남아 있다는 것이 업계 관측인데 결국 EU의 최종 결정과 한국 정부의 협상 결과가 향후 유럽 시장 판도를 좌우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