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시대를 선도하던 유럽 선진국들이 스스로 내린 ‘보조금 폐지’ 결정을 되돌리고 있다.
재정 건전화를 명분으로 지원을 끊은 지 불과 1~2년 만에 판매 절벽이 현실화되자, 정책 전환을 강요받은 것이다.
보조금 폐지가 부른 판매 절벽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가 2026년 3월 발간한 ‘주요국 전기차 보조금 정책변화 동향 및 시사점’ 보고서는 이 현상을 명확하게 짚는다. 보고서는 전기차 시장이 아직 가격 민감도가 높고 정부 지원에 강하게 의존하고 있음을 수치로 증명한다.
독일은 2023년 말 예산 문제를 이유로 전기차 보조금을 조기 중단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2024년 전기차 판매량이 전년 대비 27.4% 급감하며 유럽 최대 전기차 판매국 지위까지 내려놓았다.
영국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2022년 6월 저공해 승용차 보조금을 폐지한 이후 전기차 시장이 급속히 냉각됐다. 2024년 기준 전기차 판매량 중 개인 구매 비중은 고작 20%에 그쳤다. 나머지 80%는 법인·리스 수요가 채웠다. 보조금 없이는 일반 소비자가 전기차 구매를 기피한다는 방증이다.
수치가 증명한 선진국의 정책 U턴
독일은 실패를 인정하고 신속하게 방향을 틀었다. 2024년 7월 법인 전기차 세제혜택을 도입한 데 이어, 올해 1월에는 전기차 구매·리스 지원제도를 전격 재도입했다. 영국도 2025년 7월 3만7000파운드(약 6510만원) 이하 전기차 신규 구매자에게 최대 10%를 할인해주는 보조금 제도를 부활시켰다.
미국의 사례는 더욱 극단적이다. 2025년 9월 북미 최종 조립 전기차에 지급하던 최대 7500달러 보조금 정책을 폐지한 결과, 전기차 증가율은 주요국 중 최저 수준인 1%에 머물렀다.
프린스턴대 분석에 따르면 미국 내 전기차 판매량은 2027년까지 30%, 2030년까지 40%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보조금 유지냐 폐지냐가 시장 전체의 방향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임이 다시 한번 입증된 셈이다.
한국, 보조금 확대로 뚜렷한 반등세
한편 국내 전기차 시장은 정반대의 흐름을 보이고 있다. 2026년 국내 전기차 보조금 단가는 최대 580만원으로 전년과 동일하지만,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전환 시 최대 100만원이 추가 지원돼 실질 수령 한도는 680만원으로 늘었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올해 1~2월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4만1293대로 전년 동기 대비 166.9% 급증했다. 다만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일부 지자체에서는 보조금이 조기 소진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어, 예산 확충이 시급한 과제로 부상했다.
정대진 KAMA 회장은 “구매 보조금은 수요 확대에는 효과적이었다”며 “국내 생산 기반 강화를 위해 EU 산업 가속화법이나 일본의 생산세액공제와 같은 국내 생산 촉진 세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