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급제동을 밟았다. 트럼프 행정부의 전기차 세액공제 폐지로 시장 위축이 현실화되자, 신차 출시를 대거 연기하거나 아예 철회하는 초강수를 뒀다. 공격적 라인업 확장 대신 ‘현지 생산 모델’ 중심의 내실 다지기로 선회한 것이다.
실제 2026년 2월 현대차·기아의 미국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21.9% 감소했다. 특히 한국산 수입 모델인 아이오닉6는 같은 기간 229대 판매에 그치며 77% 급감하는 충격을 받았다.
이에 현대차는 아이오닉6 페이스리프트 모델의 미국 출시를 사실상 유보했다. 현재 미국 공식 웹사이트에서도 2026년형 정보는 찾을 수 없다.
현지생산 모델만 ‘정면돌파’…명암 뚜렷
현대차의 전략 조정은 명확하다. 조지아주 메타플랜트에서 생산하는 아이오닉5와 아이오닉9는 2026년형 업데이트를 확정했다. 관세 리스크가 없는 현지 생산 체제를 갖춘 덕분이다. 그러나 성적표는 엇갈렸다.
아이오닉5는 지난 2월 3,239대 판매로 전년 대비 33% 성장하며 호조를 보였지만, 대형 SUV 아이오닉9는 보조금 폐지 여파로 505대 판매에 그치며 전년(1,085대)의 절반 수준으로 추락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고성능 모델인 아이오닉6 N은 올해 출시를 예고했으나, 업계에서는 “극히 제한적 판매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국 생산 물량을 들여오는 리스크를 최소화하겠다는 의도가 뚜렷하다. 향후 트럼프 행정부의 고관세 정책이 현실화되면 가격 경쟁력 확보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제네시스·기아, 전기차 라인업 대대적 축소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의 상황은 더욱 엄중하다. 전동화 세단 일렉트리파이드 G80은 2025년 8월 이미 생산이 중단됐으며, 2026년 예정됐던 페이스리프트 모델의 미국 출시도 최종 철회됐다.
대형 SUV GV90(네오룬 콘셉트 기반)의 양산 일정도 안갯속에 빠졌다. 제네시스는 당분간 GV60과 전동화 GV70 등 검증된 SUV 라인업에만 집중할 방침이다.
기아의 타격은 더 크다. 전기차 대중화를 견인할 기대주였던 EV3(소형 SUV)와 EV4(세단)의 미국 진출 계획이 사실상 백지화됐다.
기아는 지난해 10월 EV4에 대해 “출시 연기”를 공식 발표했으나, 이후 웹사이트에서 관련 정보가 삭제되면서 출시 무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EV3 역시 당초 2026년 출시 목표에서 무기한 연기 가닥을 잡았다.
한편 업계는 2026년 2월 현재 중동 전쟁으로 미국 휘발유 가격이 한 달간 19% 급등한 상황에서, 고유가가 오히려 전기차 수요를 촉발할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업계 관계자는 “향후 몇 달 내 일부 비주력 전기차 모델의 정식 단종이나 추가 출시 연기 발표가 잇따를 가능성이 있다”며 신중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