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시장이 신차를 압도하는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사회초년생의 ‘첫 차’ 선택 기준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서울 인근 중고차 매매단지에서는 경차 코너보다 소형 SUV 구역에 발길이 집중되는 풍경이 일상화됐다.
예산 1,800만원을 잡고 온 30대 한 직장인은 “경차를 보러 왔지만 공간 차이가 생각보다 컸다”며 셀토스와 트레일블레이저 사이를 오가는 모습을 보였다.
소형 SUV 시세, 전체 하락 속 ‘홀로 상승’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SUV 비중은 전체 승용차 등록의 약 60%까지 확대됐다. 반면 경차 신규 등록은 2010년대 초반 대비 감소세를 보였다. ‘첫 차는 경차’라는 공식이 흔들리는 배경에는 가격 역전 현상이 자리한다. 경차 상위 트림이 1,800만원 안팎까지 오르면서, 동일 예산으로 중고 소형 SUV를 선택하는 소비자가 증가한 것이다.
직영 중고차 플랫폼 케이카(K Car)가 국내 출시 10년 이내 740여개 모델을 분석한 결과, 국산차와 수입차 전체 시세는 각각 0.3%, 0.9% 하락했다. 그러나 1,500만~2,000만원대 소형 SUV는 역행 상승세를 나타냈다.
쉐보레 더 뉴 트레일블레이저는 3.6% 올라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고, 르노코리아 XM3(1.3%), 트레일블레이저(2.5%)도 오름세를 보였다. 기아 니로(0.4%), 셀토스(0.2%), 현대차 코나(0.3%) 역시 소폭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기도 인근 중고차 매매단지 관계자는 “예전에는 취등록세 혜택을 우선 고려했지만, 최근에는 잔존가치와 안전성을 함께 따지는 분위기”라며 “1,500만원대 셀토스나 XM3는 입고 후 비교적 빠르게 거래된다”고 전했다. 공간 활용성과 실용성을 동시에 잡으려는 실속 소비가 시세를 떠받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20대 신차 이탈 가속, 초봉-신차 가격 격차 심화
중고차 거래 플랫폼의 20대 사용자는 2025년 12월 기준 전년 동기 대비 29% 급증했다. 이는 30~50대 증가폭을 크게 상회하는 수치다.
20대 남성의 신차 등록은 2023년 52,866명에서 2024년 45,957명으로 15% 감소했고, 여성은 19% 줄었다. 30대 남성 감소율(5%)과 비교하면 약 3배 차이다.
배경에는 신차 가격 상승과 소득 정체가 맞물려 있다. 2024년 국내 신차 평균 가격은 5,050만원(전년 대비 2.3% 상승)인 반면, 대졸 초봉은 3,200~3,400만원 수준에 머물렀다.
이홍주 소비자학과 교수는 “20대의 자동차 소비는 더 이상 ‘첫 차는 신차’라는 공식에 얽매이지 않는다”며 “경제 사정과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합리적 선택이 중고차 시장 확대를 가속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수입 세단·전기차는 조정, 신차 연동 민감
한편 소형 SUV와 달리 수입 세단과 전기차는 하락 국면이다. 신차 프로모션 영향으로 벤츠 E-클래스 W213(-2.1%), BMW 5시리즈 G30(-1.8%) 등 인기 세단 시세가 내려갔다.
전기차 역시 제조사 가격 인하 경쟁이 이어지며 테슬라 모델 Y 주니퍼(-3.2%), 기아 더 뉴 EV6(-4.6%)가 조정 흐름을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신차 가격이 내려가면 중고차 시세도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중고차 시장의 선택 기준은 재편되고 있다. 단순 저가 지향에서 벗어나 예산 안에서 공간·안전·잔존가치를 종합 검토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특히 중고차 거래 투명성 강화와 모바일 플랫폼 확산이 이러한 변화를 뒷받침하며, ‘첫 차 공식’의 재정의가 본격화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