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제품이 잘 팔리는데도 가격을 올리지 않는 기업이 있다. 삼양식품은 미국 수출 제품 일부에 대해 가격 인상을 검토하면서도, 국내 시장에서는 라면값을 유지하기로 했다.

고물가, 관세 인상, 물류비 부담이 겹친 상황에서도 국내 소비자에게는 최대한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이유다. 삼양식품은 지난 3월, ‘불닭볶음면’을 포함한 주요 제품의 국내 판매 가격을 올해에는 인상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수익성은 악화됐지만, 해외 시장 확대를 통해 버텨보자는 내부 판단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선 가격 인상… 한국은 예외

한미 양국은 지난 7월 31일, 미국에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조건으로 상호 관세를 일부 인하하기로 합의했다.

한국 기업에 부과될 미국 수입 관세는 기존 25%에서 15%로 조정됐지만, 여전히 기존의 일반 관세 10%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삼양식품은 이에 따라 미국 현지에서 일부 품목의 가격 인상을 검토 중이다. 현재 월마트, 코스트코 등 유통사들과 구체적인 조건을 조율하고 있으며, 품목별·유통망별로 대응 방식을 달리할 예정이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미국 수출 제품의 관세가 올라가면서 일부 가격 조정은 불가피하다는 판단이 있었다”고 밝혔다.

삼양식품은 그간 원가 절감과 물류 개선, 수출 지역 다변화 등을 통해 관세 인상 충격을 줄이려는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관세가 본격적으로 오르면서 가격 유지만으로는 더 이상 대응이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매운맛 하나로 미국을 사로잡았다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은 최근 미국에서 특히 10대와 20대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2024년 미국 시장조사기관 누머레이터에 따르면, 삼양식품은 미국 알파 세대(2010~2024년생) 사이에서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 1위에 올랐다.

불닭볶음면의 매운맛과 까르보, 치즈, 하바네로라임 등 다양한 변형 제품들이 미국 소비자에게 주목받으면서 북미 수출도 급증했다.

삼양식품의 미국 시장 매출은 2024년에 2억 8천만 달러(약 3,600억 원)로 전년 대비 127% 증가했다. 2025년 1분기에도 62% 성장해 9,100만 달러(약 1,273억 원)를 기록했다.

현재 삼양식품 전체 매출의 약 80%가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그중 미국 비중이 특히 높다.

SNS 마케팅과 유명인의 소비 영상도 성장에 영향을 줬다. 불닭볶음면을 구매하는 영상은 틱톡에서 수천만 회 이상 재생됐고, 미국 대형 유통점에서는 일부 품목이 품절되는 현상도 나타났다.

삼양식품이 국내 가격을 유지한 배경에는 브랜드 신뢰를 지키겠다는 전략이 작용했다. 단기적인 이익보다 소비자와의 관계를 우선시했다는 것이다.

수익성이 나빠진 상황에서도 국내 가격을 올리지 않은 이유에 대해 회사 측은 “해외에서 수익을 확보하면서, 국내 시장에서는 브랜드 신뢰를 유지하는 방향이 장기적으로 유리하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즉, 해외에서는 관세에 따라 일부 조정이 불가피하더라도, 국내 시장에서는 ‘가격보다 신뢰’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삼양식품의 이번 결정은 단기 성과보다는 안정적인 브랜드 운영을 우선하는 선택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