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담대 막자 신용대출로 몰렸다
하루 2730억씩 불어나는 가계빚
서민·중저신용자 대출길 더 좁아져

정부가 가계대출 규제 고삐를 죄자 불과 한 달 만에 예상 밖의 결과가 나타났다. 하루 2730억 원꼴로 가계대출이 불어나며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초비상에 걸렸다.
특히 주택담보대출 문턱이 높아지자 대출 수요가 신용대출로 몰리면서, 정작 서민과 중저신용자의 금융 접근성만 악화됐다는 비판이 거세다.
하루 2730억 원씩, 두 달 전보다 더 빨라

10일 금융권 집계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지난 7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760조 8845억 원으로, 7월 말보다 1조 9111억 원 늘었다.
불과 7일 만에 하루 평균 2730억 원이 불어난 셈이다. 이는 7월 증가 속도(일평균 1335억 원)의 두 배를 넘고, 6월(2251억 원)보다도 479억 원 많다.
가계대출을 이끈 건 신용대출이었다. 같은 기간 신용대출은 103조 9687억 원에서 105조 380억 원으로 1조 693억 원 증가했다.
주담대(전세대출 포함)도 604조 5498억 원으로 일주일 새 5796억 원 늘었지만, 신용대출 증가폭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었다.
규제 앞두고 ‘선대출’… 공모주·잔금이 불붙였다

전문가들은 대출 급증 배경으로 크게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 6·27 대책으로 수도권 주담대 한도가 최대 6억 원으로 줄자, 대출 수요가 신용대출로 이동했다.
둘째, 정부가 곧 추가 규제를 내놓을 것이란 전망에 차주들이 ‘일단 받아놓자’는 심리로 선제적으로 움직였다. 셋째, 5~6월 주택 거래 급증의 후속 잔금 대출이 이달 초부터 실행되기 시작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 시기 계약 건들은 규제 이전 거래라 막을 수 없다”며 “특히 잔금일이 월말로 몰리는 경향이 있어 하순으로 갈수록 주담대 증가 폭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공모주 청약 열풍도 불을 지폈다. 최근 지투지바이오, 삼양컴텍, 에스엔시스 등 기업공개에 수조~수십조 원대 증거금이 몰렸고, 일부 투자자들이 신용대출로 청약 자금을 마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은행권, 모집인 창구 닫고 고신용자만 대출

가계대출 증가세가 꺾이지 않자, 은행권은 총량 관리 목표 안에서 대출을 틀어막고 있다.
하나은행·NH농협·신한은행은 9월 실행 예정인 주담대와 전세대출의 모집인 접수를 중단했고, IBK기업은행은 시점에 상관없이 전면 차단했다.
신한은행은 수도권 외 지역에서도 10월까지 조건부 전세대출을 내주지 않고, 1주택 이상 보유자의 전세대출도 전국적으로 제한했다.
이 같은 조치는 일부 대출모집인이 “지금 받아야 한다”며 소비자를 부추긴다는 내부 지적이 나오면서 속도를 냈다. 은행들은 모집인 창구를 막아 향후 수개월 뒤 대출 실행 급증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것이다.
대출 문턱 최고 수준…중저신용자 ‘사각지대’

문제는 규제가 서민층을 더 옥죄고 있다는 점이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 은행이 6월 신규 취급한 가계대출 평균 신용점수는 944.2점으로,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최고였다.
주담대 평균은 945.4점, 신용대출은 941.1점, 마이너스통장은 무려 962.3점이었다.
2년 전만 해도 평균 920점대였던 차주 신용점수가 불과 24개월 만에 20점 이상 뛰었다. 현재는 940점 안팎의 고신용자가 아니면 안정적으로 대출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서민금융연구원은 지난해 저신용자 최대 6만 1000명이 제도권 밖으로 밀려나 대부업·불법 사금융으로 향했다고 추산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규제가 실수요자보다 투기 수요를 겨냥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힘없는 서민과 중저신용자의 숨통이 더 조여졌다”며 “시장 불안을 막으려던 대책이 부작용을 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