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전기차 수출 88% 급감
현지 생산 확대에도 판매 부진
9월 세액공제 종료 더 큰 타격
현대차그룹이 야심 차게 밀어붙인 전동화 전략에 큰 제동이 걸렸다.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의 고전으로 수출량이 작년 대비 7천 대 수준으로 쪼그라들었고, 앞으로의 전망도 밝지 않다.
급기야 국내 공장 가동까지 멈춰섰다. 전기차 전환의 핵심 동력 중 하나였던 미국 수출 시장이 사실상 멈춰서면서, 관련 부품업계와 국내 생산 기반마저 흔들릴 위기에 놓였다.
수출량 88% 급감…3년 만에 되레 역주행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현대차·기아가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미국에 수출한 전기차는 총 7천156대에 그쳤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 5만9천705대와 비교하면 무려 88%가 감소한 수치다.
브랜드별로 보면 현대차(제네시스 포함)는 3천906대를 수출해 87%가 줄었고, 기아는 3천250대로 89.1% 급감했다. 이는 전동화 전략이 본격화된 2021년 이후 가장 낮은 수출 실적이다.
그간 현대차그룹의 대미 전기차 수출은 꾸준히 성장세를 보여왔다. 2021년 1만9천820대, 2022년 6만8천923대, 2023년에는 12만1천876대까지 늘었지만, 올해는 연간 2만 대도 넘기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지 생산도 부진…조지아 공장 효과 미미
현대차그룹은 미국 내 입지를 다지기 위해 올해 상반기 조지아주에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준공하며 전기차 전용 공장을 마련했다.
실제로 아이오닉5는 2만8천957대, 아이오닉9는 4천187대가 생산·출고됐고, 기아도 EV6 7천441대, EV9 7천417대를 현지에서 생산해 판매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과는 미미했다. 시장조사업체 워즈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현대차·기아는 올해 상반기 미국 시장에서 총 4만4천555대의 전기차를 판매했다.
이는 작년 동기 대비 28% 감소한 것이다. 반면 미국 전체 전기차 시장은 같은 기간 5.2% 성장했다. 현대차그룹만 유일하게 뒷걸음질한 것이다.
특히 올해 상반기 미국 내 판매 감소는 2021년 이후 처음 나타난 역성장이다. 조지아 공장을 가동하며 공격적인 현지화를 시도했음에도 소비자 반응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 셈이다.
세금 혜택도 사라진다…국내 생산 위축 현실화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오는 9월 말부터 미국의 전기차 구매 세액공제가 조기 종료되면서, 하반기 전망은 더욱 어두워졌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밀어붙이고 있는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BBBA) 시행에 따른 것이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세액공제가 종료되면 현대차그룹의 미국 내 전기차 판매가 최대 4만5천828대, 약 2조7천200억원 수준의 매출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현대차·기아 중심의 국내 생산 기반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작년 기준으로 미국은 현대차그룹 전기차 전체 수출의 36%를 차지했다. 수출이 막히면 당연히 국내 생산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실제로 현대차는 지난 7월 16일부터 21일까지 울산 1공장의 12라인 가동을 멈췄다. 이곳에서는 아이오닉5와 코나EV가 생산되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다섯 번째 휴업이다.
한 부품업계 관계자는 “미국 수출을 겨냥해 전기차 설비에 투자한 기업들이 많은데, 계획이 틀어지면서 투자금 회수가 어렵게 됐다”며, “미국에 동반 진출하지 못한 협력사들은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미래차 전환을 앞두고 미리 연구개발과 인력 확충에 나섰지만, 수요 정체 상황에서 수출마저 줄어 캐즘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편 전기차 시대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현대차그룹의 도전이 예상보다 거센 벽에 부딪혔다. 국내 산업 생태계 전반에 미칠 파장을 감안할 때, 단순한 실적 하락으로만 보기는 어려운 상황으로 전략의 전면 재정비가 필요한 시점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