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차까지 품귀 현상 심화
해외 수출에 내수 공급난까지
최장 대기 기간 22개월 소요
“지금 계약하면 2027년에나 받을 수 있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보기 드문 일이 현실이 됐다. 현대차의 경형 전기차 ‘캐스퍼 일렉트릭’ 이야기다.
출고 대기만 길게는 22개월.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전시차라도 손에 넣으려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인기는 폭발적이지만, 정작 국내 소비자에게는 ‘그림의 떡’이 되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대기 행렬
현대차가 2026년형으로 내놓은 캐스퍼 일렉트릭은 가격, 디자인, 성능을 두루 갖추고 있어 소비자들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전장 3,825~3,845mm로 기존 내연기관 모델보다 길어졌지만 도심 주행에 알맞은 크기를 유지했고, 적재공간도 280리터로 확대됐다.
그러나 문제는 출고다. 프리미엄과 인스퍼레이션 트림은 평균 15개월, 크로스 트림은 13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인기 옵션을 추가하면 상황은 더 심각해져 최대 22개월까지 늘어난다.
해외 수출, 국내 물량 잠식
긴 대기 행렬의 배경에는 해외에서의 폭발적 인기가 있다. 캐스퍼 일렉트릭은 유럽 시장에 ‘인스터(INSTER)’라는 이름으로 출시됐는데, 출시 6개월 만에 판매량 1만 대를 돌파했다.
같은 기간 국내 판매량보다 2.6배 이상 많다. 일본 시장에서도 판매가 146% 늘며 예상 밖의 성과를 거뒀다. 특히 광주글로벌모터스에서 생산되는 물량 상당수가 유럽과 일본으로 빠져나가면서, 국내 공급은 병목 현상에 빠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상품성을 인정받은 건 긍정적”이라며 “다만 이에 따라 국내 소비자는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를 붙잡은 ‘가성비와 첨단 사양’
긴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캐스퍼 일렉트릭을 선택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무엇보다 가격 경쟁력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다. 정부와 지자체 보조금을 받으면 실구매가는 2천만 원대 초중반까지 떨어진다.
이는 내연기관 소형차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저렴한 수준이다. 여기에 연식 변경을 거치면서 첨단 사양이 대거 탑재된 것도 한몫했다.
특히 인스퍼레이션 트림에는 고속도로 주행 보조,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같은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이 기본으로 들어갔으며 통풍 시트, 어라운드뷰 모니터, 실내 V2L 기능 등 편의 사양까지 강화돼 체급을 뛰어넘는 만족감을 준다.
전시차까지 쟁탈전, 웃픈 현실
한편 국내 소비자들은 차를 빨리 받기 위해 전시차나 소량으로 풀리는 ‘기획전’ 차량을 잡으려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전시차라도 좋으니 빨리 인도받고 싶다”는 글이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현대차로서는 국내 시장은 물론 세계 시장에서까지 인정받으며 ‘행복한 고민’을 안게 됐지만, 정작 안방에서는 소비자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K-자동차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그 대가로 국내 소비자가 수년을 기다려야 하는 현실은 아이러니한 상황으로 현대차가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속에서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