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자동차 업계의 과도한 저가 경쟁을 정조준했다.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은 11일 ‘자동차 산업 가격 행위 준법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12일부터 즉시 시행에 들어갔다.
완성차 업체가 출고가를 생산 원가 이하로 책정하거나, 고사양 옵션을 기본 사양처럼 묶어 판매하는 ‘가격 꼼수’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번 규제는 완성차 제조사뿐 아니라 부품 업체, 공식 딜러, 온라인 플랫폼까지 포괄한다. 생산 단계부터 최종 판매까지 전 과정의 가격 행위를 관리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이번 조치가 장기화된 자동차 업계의 ‘내권(內卷)’ 현상, 즉 과열 경쟁으로 인한 산업 피폐화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옵션 꼼수부터 미끼 광고까지 총망라
가이드라인은 업계의 대표적 편법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우선 완성차 업체가 출고가를 원가 이하로 낮추는 행위에 대해 ‘중대한 법적 리스크’가 있다고 경고했다. 고급 옵션을 기본 사양인 것처럼 포장해 실질 가격을 낮추는 수법도 금지 대상이다.
판매 단계에서는 더욱 세밀한 규제가 적용된다. 초기 무료로 제공하던 자율주행 보조 시스템(ADAS)이나 커넥티드 서비스를 일정 기간 후 유료화할 경우, 해당 기간과 요금 기준을 사전 고지하고 소비자에게 재차 안내해야 한다. 명확히 고지되지 않은 옵션에 대해서는 요금 부과 자체가 불가능하다.
‘재고 정리’, ‘한시 인하’ 같은 판촉 문구를 내걸었다면 실제 판매 가격은 판촉 시작 전 7일 이내 최저 거래가보다 높아서는 안 된다. 색상·원산지·규격에 따른 추가 비용 징수, 허위 할인율 표시, 저가 미끼 광고도 명백히 금지했다. 다만 위반 시 구체적 처벌 수위는 아직 명시하지 않았다.
BYD가 촉발한 중국 EV 시장 과열 경쟁
이번 규제의 배경에는 중국 전기차 시장의 급격한 지형 변화가 자리한다. 2024년 7월 중국 토종 제조사 BYD가 글로벌 판매량에서 테슬라를 제치며 업계 주도권을 탈환한 이후, 중국 내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가격을 무기로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려는 제조사들이 늘면서 원가 이하 덤핑 판매가 만연했다.
특히 중국 배터리 제조사들이 주행거리 150만km급 리튬 배터리를 앞다퉈 출시하며 기술 경쟁까지 가세했지만, 정작 수익성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부터 자동차뿐 아니라 태양광, 이차전지 등 주력 산업에서 나타나는 저가 경쟁 문제를 지속적으로 지적해왔다. 단기 점유율 확대를 위한 출혈 경쟁이 장기적으로 산업 생태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 미칠 파장
한편 중국 정부의 이번 조치는 자국 산업 보호와 건전한 경쟁 질서 확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겨냥한 것으로 분석된다. 과도한 가격 경쟁으로 체력이 약해진 중소 업체들이 도태되는 것을 막고, 동시에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산=저가’라는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다만 업계는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구체적 처벌 규정이 없어 강제력이 약하다는 지적이다. 또한 중국 전기차 제조사들이 이미 확보한 가격 경쟁력이 규제만으로 쉽게 꺾일지도 미지수다.
이에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중국 시장의 이번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가격 규제가 실제로 작동한다면 중국산 전기차의 해외 수출가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 상대적으로 경쟁 부담이 줄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중국 자동차 시장의 가격 질서가 정상화될지, 아니면 규제를 우회하는 새로운 편법이 등장할지는 향후 몇 개월간의 시장 추이가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