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가 투자한 미국 전기차 스타트업 슬레이트 오토가 총 7억 달러(약 1조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며 본격 양산 체제에 돌입했다. 2022년 설립된 이 회사는 2025년 4월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첫 모델 ‘2027 슬레이트 트럭’을 공개한 지 2주 만에 예약 10만 건을 돌파하며 시장의 폭발적 관심을 입증했다.
슬레이트 트럭의 핵심은 실구매가 2만 달러(약 2,800만 원)라는 파격적 가격이다. 기본 가격 27,500달러에서 연방 세액공제 7,500달러를 적용하면 미국 시장에서 가장 저렴한 전기차인 닛산 리프 S(29,280달러)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고가 하이테크 전기차가 주류인 미국 시장에서 저가·모듈형·DIY 친화 전략으로 차별화를 시도하는 슬레이트의 행보는 전기차 진입 장벽을 낮추는 동시에, 기존 완성차 제조사들의 가격 전략 재검토를 압박할 전망이다.
베조스 1조 원 베팅, 연 15만 대 생산 체제 구축
슬레이트 오토는 베조스 익스페디션스, 제너럴 캐탈리스트, TWG 글로벌 등이 참여한 시리즈 A·B 라운드를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인디애나주 워소의 옛 인쇄 공장(약 13만㎡)을 전기차 생산 공장으로 전환하고 있다.
2026년 말 첫 고객 인도를 시작으로 2027년 말까지 연간 15만 대 생산 체제를 갖출 계획이며, 이 과정에서 약 2,000명의 고용이 예상된다.
미시간주 트로이에 본사를 둔 슬레이트는 배터리와 핵심 부품을 미국 현지에서 조달해 ‘미국산 EV’ 지위를 확보하려는 전략을 구사한다. 이는 공급망 리스크와 관세 영향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정치적·경제적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포석으로 분석된다. 예약금은 50달러로 완전 환불이 가능하며, 실제 사양 구성과 구매는 추후 별도 단계에서 진행된다.
픽업→SUV 변신 가능한 모듈형 플랫폼
슬레이트 트럭의 가장 큰 차별점은 모듈형 플랫폼이다. 기본 2도어 2인승 컴팩트 픽업에 SUV 키트를 장착하면 수 시간 내에 5인승 SUV로 전환할 수 있으며, 패스트백 스타일이나 오픈에어 스타일로도 변경 가능하다. 슬레이트는 “We built it. You make it.(우리가 만들고, 당신이 완성한다)”는 슬로건 아래 100개 이상의 액세서리와 키트를 제공해 사실상 무제한 커스터마이징을 지원한다.
파워트레인은 후륜 단일 전기모터로 150kW 출력(201마력), 195lb-ft 토크를 발휘한다. 0-60mph 가속은 약 8초, 최고속도는 90mph로 도심과 근거리 통근에 최적화됐다. 배터리는 기본 52.7kWh(주행거리 약 240km)와 옵션 84.3kWh(약 386km) 두 가지가 제공되며, DC 급속충전은 120kW급으로 20~80% 충전에 약 30분이 소요된다.
기본 사양은 철저하게 단순화됐다. 회색 플라스틱 컴포지트 패널의 무도장 차체, 수동 크랭크 윈도우, 물리 HVAC 다이얼 중심의 ‘아날로그 EV’ 콘셉트로 불필요한 전자 장비를 배제했다. 내장 라디오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장착되지 않으며, 중앙 스마트폰 거치대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업계 최초로 고객이 직접 수리해도 워런티를 유지해주는 DIY 워런티 시스템을 도입해 가격 민감 소비자층을 공략한다.
저가 전략의 성패, 품질 검증이 관건
한편 슬레이트의 파격적 저가 전략이 실제로 성공할지는 양산 이후 품질과 내구성, 사후 서비스 체계가 검증되어야 판단할 수 있다. 무도장 차체와 수동 윈도우 등 ‘아날로그’ 접근이 일부 소비자에게는 저가의 근거로 해석될 리스크가 존재한다. 또한 연방 세액공제 7,500달러가 축소될 경우 실제 판매가는 중·후반 2만 달러대로 상승해 가격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
버려진 인쇄 공장의 리모델링이 일정대로 완료돼 2026년 말 첫 인도, 2027년 말 연 15만 대 생산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한 변수다. 다만 전기차 시장이 일시적 수요 정체에 빠진 시점에서 저가 세그먼트의 공백을 정확히 겨냥한 전략은 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는 평가다.
현재 슬레이트는 미국 내수 시장에 집중하고 있으며, 해외 판매나 우핸들 사양은 아직 계획되지 않았다. 향후 한국 진출 시 충전 표준 호환성과 국내 안전 인증 절차가 변수가 될 전망이며 저가 전기차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줄지, 품질 논란에 휩싸일지는 실제 양산 이후 시장의 평가가 가를 것으로 보인다.